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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 선두에 나선 윤영삼 선생의 손자 윤신중씨

항일운동 선두에 나선 윤영삼 선생의 손자 윤신중씨

by hstkcr 2019.08.16

독립운동가 윤영삼, 안성 4.1 독립항쟁서 만세운동 주도
안성경찰서 일제군경들의 고문으로 순국한 애국지사
1991년 대한민국 정부 건국훈장 애국장 수여 받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 휴스턴 독립운동가 후손을 찾아서 3편에서는 1919년 3.1운동 이후 실력항쟁 가운데 가장 으뜸이었던 ‘안성 4.1 독립항쟁’에서 선두 활약한 애국지사 윤영삼 선생(尹榮三 1891~1919)을 소개한다. 애국지사 윤영삼 선생은 휴스턴 한인동포 휴스턴광복회 사무장 윤신중 씨의 조부이다.
안성의거로 불리는 ‘안성 4.1 독립항쟁’은 3월 11일 안성읍내의 독립만세운동을 발단으로 죽산·양성·원곡면 일대에서 연이어서 격렬히 전개되다 4월1일에는 1,000여 명의 원곡면민들을 외가천리에 있는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고, 양성면민 1,000여 명은 동항리에 있는 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만세운동을 펼쳤다. 2,000여 명의 시위군중은 이날 오후 10시경 경찰관주재소와 숙직실을 습격, 방화하고 일본경찰에게 독립만세를 외치게 하였다. 또,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습격해 기물을 파괴, 방화한 뒤 우편소를 파괴하였고 주재소와의 연락을 두절시키기 위해 전신주 3개를 도끼로 찍어 쓰러뜨렸다.
‘안성 의거’는 비폭력 평화시위인 3.1운동을 일제가 총칼로 막고 저지른 만행으로 이미 수천명 겨레가 희생된 연후의 실력대결이었기 때문에 정당성이 확고하다. 특히 “사격해도 된다”는 총독부의 두번째 지시가 일제 군경에게 하달된 바로 그날의 의거로 의미가 깊지만, 일제의 보복으로 인한 피해 역시 전국 최악이였다. 윤영삼 선생을 비롯해 24인이 순국했고, 피검 400명, 옥고127명, 60~90대에 이른 노인은 40여명이 태형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애국지사 윤영삼은 두 아우 윤영만, 윤영환과 함께 안성 4.1 독립항쟁에 참여 일제 축출을 위한 방화 및 파괴에 선두 활약한 후 안성경찰서에서 고문으로 순국했다. 동생들과 동지들을 살리고자 모든 짐을 자신이 짊어지고 고문을 당하다 순국한 것이다.
선두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윤영삼 선생은 고문으로 순국하며 남겨진 기록과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재판에 넘겨진 독립운동가들은 해방 후 재판기록을 통해 항일운동의 흔적을 확인 할 수 있었지만 감옥에서 순국한 경우는 그 기록을 찾기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두에서 활동한 윤영삼 선생의 항일운동은 재판과정에서 여러차례 이름이 언급되며 어렵게 항일운동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고 1977년 독립운동가로 인정되어 대통령 표창을 받고 1991년 노태우정부 훈격이 승급되어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게 됐다.
애국지사 윤영삼 선생의 장남 윤우 선생(1남1녀중 장남)은 학술적으로 처음 안성의 3.1운동을 밝혔고, 현재 안성에 세워진 3.1운동 기념관 부지를 확보하는데 크게 기여 한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윤우 선생은 제17대 광복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올해 있었던 제21대 광복회장 선거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1대 광복회장으로는 3선 국회의원 출신의 김원중 의원이 회장으로 선출됐고, 올해 5월 8일 윤우 위원장은 김원웅 당선자에게 당선증을 교부했다.

휴스턴 광복회에서 활동 중인 윤신중 사무장은 애국지사 윤영삼 선생의 손자이자 윤우 선생의 차남으로 휴스턴에서 20여년 살았다. 윤신중 사무장은 인터뷰에서 “조부께서 고문으로 순국하면서 기록을 찾아 보기 어려웠다. 할머니께서는 일찍이 남편을 떠나 보내고 고생을 많이 하셨다. 정신적 후유증으로 힘든 날들을 보내시며 홀로 아버지를 키우시며 생활고도 겪고 쉽지 않은 삶을 살아 오셨다. 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께 할아버지의 항일운동과 독립운동에 대해 많이 듣고 자랐다. 최근 한일관계와 일본제품 불매 운동에 대해서 자녀들이 궁금해 하고 있다. 자녀들에게 역사를 알려주고 이번 일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후세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윤신중 사무장은 최근 한일관계 및 일본제품불매 운동에 대해서는 “일본제품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의 불매운동이 있기 전부터 기본적으로 일본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았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한국의 시민운동에 협조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일부에서는 미국에서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의견도 있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상할 것은 없다. 개개인의 주장이고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한편, 휴스턴광복회에서는 올 초 한국에서 시작 된 독립유공자 자택에 ‘명패 달아주기 사업’이 시작되고 있어 휴스턴을 비롯한 해외에도 사업이 추진 되길 희망하고 있다. 윤신중 사무장은 “휴스턴광복회 차원에서 독립유공자 자택에 ‘명패 달아주기 사업’ 대상을 확인하고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 후손에게도 해당 사업이 함께 전개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동자강 기자>

※ 이 기사는 2019년 재외동포언론 지원사업 해외언론사로 선정된 코리아월드/휴스턴교차로 신문의 보도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역사 '독립운동가 후손을 찾아서' 주제로 작성 되었으며,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후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