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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69주년 특집] 휴스턴 한국전 참전노병을 만나다

[6.25 69주년 특집] 휴스턴 한국전 참전노병을 만나다

by hstkcr 2019.06.29

"전사자 명단 볼때, 미안하다. 살아 남아서…"

군번도 없이 총들고 적진 속으로 뛰어든 18세 학도병들
진격과 후퇴 반복·참혹한 전쟁에 아픈기억과 상처들 뿐
"6.25 북침 역사적 교훈 절대 잊지 말아 달라" 후세 당부

6.25전쟁 발발 69주년, 60만 한국군이 참여한 6.25전쟁은 1500년 이후 세계전쟁에서 7번째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비극적인 민족간 전쟁이다. 6.25전쟁은 한국군 사망자만 13만8천 여명, 미군과 영국군 3만명을 포함한 연합군 사망자는 5만8천 여명, 100만 여명의 남한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다.
휴스턴에서 6.25전쟁에 참전한 국가유공자는 22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6월25일 개최된 휴스턴 6.25전쟁 69주년기념식 행사장에는 22명의 노병들이 건강상 이유로 불과 7명 밖에 참석 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전쟁의 역사는 한인동포들과 미군, 미군 가족들에게 의해 잊지않고 전해지고 있다. 본지가 휴스턴 6.25참전 국가유공자 7인을 따로 만나 특별인터뷰를 실시했다.

25살에 군번없이 전투 참가
송형섭(1926년생) : 25살에 일사후퇴 후에 대구에 가서 미25사단에 처음으로 군번 없이 전투에 참석했다. 그리고 이듬해 대구에서 입대했다. 아직도 군번을 기억하고 있다. 치열했던 지평전투가 기억에 남는다.
화천에서 진격 할 때 중공군이 내려와서 횡성까지 후퇴 했던 기억도 아직까지 선명하다. 우리는 못먹고 사는 전쟁의 시대를 겪었다. 목숨 걸고 싸운 대가로 지금 젊은이들은 배불리 먹고 살아가고 있는데, 625가 남침이라는 소리를 해 대는 것을 보면 참으로 불화가 치민다.
전쟁의 역사에 관심조차 없는 젊은이들에게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역사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

22살 군복무 중 6.25 발발
이명기(1928년생) : 나는 22살 6.25전쟁이 일어날 때 군복무 중 옹진에 있었다. 사방이 바다인 옹진반도에 그날 새벽4시 인민군은 포격을 쏟아 부었다. 그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고기잡이 노젓는 배를 타고 긴급히 철수했다.
철수 과정에서 17연대 3,500명 중 2,000명의 병력만 남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났다. 참전용사들이 가장 안타까워 하는 점은 북침이라는 명확한 사실이 왜곡되는 일이다. 전쟁에 참전한 우리가 산 증인이다.

일병 계급장 달고 전쟁 참가
정재명(1929년생) :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나는 이미 군에 입대해 있었다. 일등병 계급장을 달고전쟁에 참여했다.
전국 전 지역이 전쟁터였다. 나는 주로 중부전선 전쟁에 많이 참여 했지만 3년간 전쟁이 진행 되면서 어디가 치열한 전쟁터였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온통 전쟁터로 혼란스러웠다. 그런 전쟁을 치렀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좌파세력들이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공산주의로 몰아가고 있어 안타깝고 국가안보에 큰 위협을 느낀다.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야 한다. 오늘 이 자리에 노병들이 많이 오지 못했지만 오늘 오지 못한 휴스턴참전유공자로는 박종훈, 간호장교 박경자, 천병로, 이종헌, 서학준 씨 등이 있다.

9월 입대 6사단에서 군 복무
최정민(1931년생) : 전쟁나고 나는 9월1일에 입대했다. 휴전을 하고 제대하며 3년간 전투에 참여했다.
6사단에서 복무했고, 나는 초산까지 진격했다. 초산까지 진격 했을 때 우리는 압록강 물을 떠다 이승만 정부에 전달했다. 그렇게 잘 싸웠지만 중공군이 밀고 내려와 후퇴 했다.
3년의 전쟁이 역사에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요즘 사람들이 625전쟁에 관심이 없어 안타깝다. 그때 전쟁에 우리가 참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8살에 학도병 1기로 참전
김영봉(1932년생) : 18살에 부산에서 전쟁에 참전했다. 학도병 제1기로 전쟁이 발발하고 9월에 정식 군번을 부여 받았다. 팔공산 전투가 기억에 남는다. 고위 간부를 모시고 전쟁에 임했기에 그 참혹했던 내부적 혼란을 생생히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여전히 함께 전쟁에 참여한 전우들이 그립고 먼저 떠나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메인다.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젊은이들이 역사를 바로 알고 배워가길 바란다.

중동부 전선서 치열한 전투
구자영(1933년생) : 18살에 전쟁에 참여해 중부전선과 동부전선에서 치열한 전투에 전우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양구전투를 비롯해 하도 많은 전쟁을 겪었다.
전우들의 시신과 끔찍하고 잔혹한 전쟁의 상처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휴전 될 때까지 전방에 있었다. 전쟁 중 원통리 점령 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한달 동안 인제 쪽 강을 건너 새벽에 총을 들고 하루 종일 진격을 반복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들은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더 나아가 미국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정부는 젊은이들에게 역사 교육을 제대로 해 지금 우리나라가 발전한 이유가 무엇인지 역사를 통해 배워 나갈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

18살 학도병으로 전쟁 참전
안영주(1933년생) : 나는 학도병이었다. 학교 졸업할 무렵에 18살에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전했다. 다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안난다.
6.25 대해서 특별히 할 말이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 세월의 아쉬움과 안타까움만큼, 전쟁도 우리사회에 잊혀져가고 있다. 역사를 잊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동자강 기자>

※ 이 기사는 2019년 재외동포언론 지원사업 해외언론사로 선정된 코리아월드/휴스턴교차로의 보도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역사 '625전쟁' 주제로 작성 되었으며,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후원했습니다.